레드롭 스토리

2022년 8월 2일

저는 3년차 개발자입니다

저는 3년차 개발자입니다

세컨드오피스를 사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직장인 커뮤니티에 “내가 생각하는 개발자의 삶”이 올라온 적이 있다. 바쁘고 화려한 도시에서 시작하는 아주 심플한 업무, 식단부터 건강을 생각하며 워라밸이 잡힌 삶. 물론 나는 아니다. 유동 인구 많은 매캐한 이 도시에서 아침을 시작해 대부분의 시간이 바쁘다. 칼퇴를 한 적이 언제더라? 신규 채용 언제 하냐는 닦달에도 매번 뽑고 있다는 말만 들으니 거의 반쯤 포기해버린 상태다. 그렇다. 나는 3년차 개발자다.

어제는 아침부터 기획자와 가벼운 마찰이 있었다. 3년차의 스킬로 무마해보려고 했지만 기획자가 호랑이 팀장님께 토스한 뒤 휴가를 떠나버린 덕에 오늘 잔업도 배부를 예정이다. 이렇게 바쁜데 도와주는 세상이 하나도 없다니. 지구 반대편이라도 좋으니 누구라도 내 일을 도와줬으면.

요즘 우린 거의 간신히 버티고 있는 수준으로 바빴다. 새로운 솔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에 기존 업무까지 해내야 하니 밤샘은 뭐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있으니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할 정도였다. 꽤 욕심이 생겨도 리소스가 나질 않으니 진도도 더딘 느낌이었다.



마침 오늘이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열두 번 직장인이 기쁨을 느끼는 월급날이었지만 통장의 잔고는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기 바빴다. 일은 이렇게 많이 하는데 왜 매번 돈이 없는지도 미스테리다. 어쨌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는데, 온 개발 구역에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나와 동료들은 무슨 일이냐고 두리번대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외국인 개발자들과 협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달전 쯤에, 아웃소싱이네 외부 개발팀이네 하면서 CTO님이 내내 고민하셨던 게 떠올랐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보던 사람들 또 보겠거니 생각했던 일이 의외로 스케일이 커져있었다.

채용 프로젝트가 결정된 후에 ‘세컨드오피스’라는 곳을 통해서 외국 개발자채용을 지원하게 되었단다. 중소기업치고 꽤나 파격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에 회사에 계셨다가 지금은 대기업으로 가신 이사님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중간 과정이 궁금해질 때쯤 세컨드오피스 개발자들과의 협업 안내에 대한 공지가 내려왔다.

[ …프런트엔드/백엔드에 각각 배치될 예정이며, 주요 인력들은 모두 시니어급 경력자로…… ]

세상에. 외주로 오게 된 사람이 시니어급 개발자라니. 책임님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방면에서 발생했다.

“혹시 영어! 영어 되는 사람 없어요? 간단한 회화 정도라도.”


옆 팀 팀장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사무실 가운데에서 외치셨다. 듣자 하니, 인도 개발자를 부른 것까지는 좋았는데 소통에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채용 과정에서 영어가 되는 사람을 구한 것은 확실한데, 문제는 우리 중에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 이사님도 그건 모르셨겠지. 영어를 잘하는, 그리고 이런 문제에 나설 용기 있는 개발자가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사실을.

팀장님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고, 책임님은 다급하게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매한 콩글리시를 이해하지 못한 화면 속 외국인 개발자는 멋쩍은 웃음만 보일 뿐이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초보 티는 벗었다지만, 이렇게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잘할 자신은 없는데…….

하지만 내 오지랖은 20년 넘게 산 나도 못 말리는 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임님의 옆자리로 가서 제가 해보겠다고 속삭였다. 책임님은 감동적인 표정으로 노트북을 넘겨주셨다. 카메라 속 남자는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최근에 영어공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실전 경험은 전무한 나. 그리고 지금 나의 역사적인 첫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The latest version contains several. Here is the code where an error occurs. Any Help would be greatly appreciated.”


놀랍게도 바다 건너편의 개발자와 나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외계인도 아니고, 같은 지구촌 사람이 대화하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그 순간의 나는 언어를 처음 배운 사람처럼 두근거렸다. 길을 알려주거나 형식적인 영어 발표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IT 개발자로서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났다. 이제 외국 개발자들과의 협업은 우리에게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과 인도에서 개발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영어로 대화하며, 일이 풀려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솔루션 개발까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 내던 개발팀에게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말로만 해왔던 애자일을 조금 더 애자일답게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과거에는 리더나 팀원이나 할 것 없이 시간에 쫓겨 일을 했었다면, 지금은 여유를 두고 문제 해결에 조금 더 초점을 둘 수 있었다.

특히 내게 이번 협업은 큰 의미로 와닿았다. 이직하는 순간까지 꽁꽁 숨겨두거나, 언젠가는 포기해버렸을 영어 공부가 내 회사 생활을 바꿔주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그때 나서서 멋있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모습이 윗선에 꽤 큰 어필이 되었던 것 같다. 아마 올해 연봉 협상…… 조금 기대해 봐도 될 지도?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업에 밀려 어영부영 넘기게 될 것 같았던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도 성과를 인정받았다. 고과에 쓸 만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팀장님도 매우 흡족해하셨다. 무엇보다 개발 조직 모두가 모이는 테크 리뷰 시간에 내 프로젝트가 언급된 건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그 덕분일까? CTO님은 솔루션 개발 업무에서도 내가 많은 역할을 해주었다고 말해주셨다. 이런 게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이구나. 내일 출근이 기대된다.